티스토리 뷰
아트 스피치, 김미경 지음, 21세기 북스
1. 도입
요즘 월요일 저녁마다 꼭 챙겨서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JTBC의 ‘싱어게인’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재야의 숨은 실력자들이 공중파 무대에서 ‘한 번 더’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이 신선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기존의 식상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틀을 깼다는 것과 참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노래, 거기에 심사위원들의 구성과 따뜻함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20대에서 60대까지, 발라드에서 락까지 획일적이지 않은 연령대와 음악의 장르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사람은 29호 가수다(밴드 바크하우스의 정홍일). 솔직히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모범적으로 성장한 나에게 ‘락’이란 장르는 피해야 하는 음악을 넘어 금지곡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에게 많이 끌린다. 이유가 있다면, 사장되어 가고 있는 락을 고집하며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다는 것과, 노래의 실력과 그의 노래 안에 담겨 있는 ‘진정성'이다. 특히 김미경 작가의 아트 스피치를 읽는 내내 떠오른 사람이 바로 29호 가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그렇게 오버랩 되게 만들었을까?
2. 알에서 나와야 한다
저자는 1부에서 스피치(말하기)의 오해와 편견을 다루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장 먼저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피치의 오해를 지적한다. 말을 잘하는 것은 타고 난 것이지 연습이나 훈련으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조건 배우면 된다고 강조한다. 그다음은 스피치의 편견을 다룬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말만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토론이나 대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한다. 이런 사회-문화적 편견을 깨야 말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콘텐츠’를 강조한다. 말만 화려하고 멋있게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청자에게 ‘무엇을 전달해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피치를 “진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p.31). 그렇다면 말은 도구일 뿐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말의 화려함이나 전달의 스킬(skill)이 아니다. 그 말을 통해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다시 말해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전환이 먼저 필요하다. 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고 나와서 각자의 콘텐츠를 발견할 때 참된 스피치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콘텐츠 말고 뭐시 중헌디!
이어지는 2부에서는 콘텐츠에 대해서 다룬다. 그렇다면 저자가 강조하는 콘텐츠란 무엇인가? 여기에도 우리의 오해가 작동한다. 우리는 보통 콘텐츠라고 하면 정보와 지식을 떠올린다. 남이 가지고 있지 않는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콘텐츠라고 착각한다.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뛰어넘어 ‘나만의 독특한 콘텐츠를 갖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p.70). 자신의 삶을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 실패와 성공, 좌절과 극복을 통해서 배운 지혜와 지식들이 바로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다.
그다음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그럼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이다. 저자는 그것을 음악과 작곡에 빗대어 설명한다. 특히 작곡을 하려면 이야기, 곧 구조가 반드시 필요한데, 저자가 추천하는 구조는 A-B-A’이다. 이 구조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에서는 몇몇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를 풀어가고, B에서는 극적인 에피소드를 섞어 클라이맥스로 이끌고, 다시 A(A’)로 되돌아가 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주제를 상기시키고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간다”(p.93). 결국 콘텐츠라는 재료를 어떻게 요리를 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4. 리듬감을 더하라
4부에서는 앞에서 다룬 콘텐츠와 구조 위에 리듬감을 더해주라고 권면한다. 전자가 오선지 안에 음표를 그려넣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 오선지 위에 강약과 속도를 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리듬감을 덧칠하는 이유는 청자에게 나의 콘텐츠를 전달할 때 지루함을 피하고 집중과 감동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콘텐츠의 핵심은 ‘지’(知)이며, 거기에 리듬감을 더하는 목적은 ‘정’(情)에 있다. 어느 때는 빠르게, 어느 때는 느리게, 어떤 구간에서는 세게, 다시 어떤 구간에서는 여리게 함으로 듣는 이들의 감정을 만지는 것이다.
한국적인 상황 안에서는 여전히 감정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지식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식과 함께 감정이 만져야 한다. 감정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움직이게 만든다. 콘텐츠가 중요하지만, 콘텐츠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내가 준비한 콘텐츠가 누군가의 마음에 박히고,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지’와 함께 ‘정’이 만져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위대한 스토리에는 내용과 구조가 존재하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음을 만지는 요소들도 존재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융합되어야 진정한 ‘전달’이라는 것이 일어난다. 그냥 들린다고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5. 종결
최근 29호 가수가 부른 곡은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 송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원래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인 곡이라고 한다. 29호 가수는 평생 ‘아싸’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빗대어 그 곡을 불렀다. 전반부는 원곡의 분위기를 살려서 여리고 느리게 진행했다. 그러다가 중반부 이후부터 락의 분위기를 힘껏 살려 포효하듯이 울부짖는다.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발견한 것은 노래도 노래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그 사람이 바로 콘텐츠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일주일 내내 29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책(아트 스피치)을 읽었다. 노래와 말하기의 공통점을 발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설교자로 살아가는 내 삶에 적용이 된다. 설교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연구와 글쓰기에 매달리고 주말에는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끙끙거리며 씨름한다. 목사로 산다는 것은 평생 ‘글쟁이’와 ‘말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29호 가수를 통해 그리고 아트 스피치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